
우주로 사람을 쏘아 올리려면 계산을 해야 합니다.
컴퓨터가 없던 시절에는 그걸 사람이 했어요. 실제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을 컴퓨터라고 불렀습니다. 계산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었죠.
그중에 흑인 여성들로만 구성된 팀이 있었습니다. 이 영화는 그 사람들 얘기입니다.
세 사람이 각각 다른 벽에 부딪힙니다
주인공이 셋입니다. 이게 처음엔 좀 산만하게 느껴질 수 있는데, 보다 보면 왜 셋인지 알게 돼요. 각자 다른 종류의 벽에 막혀 있거든요.
캐서린은 계산을 아주 잘합니다. 그래서 백인들만 있는 부서로 배치되는데, 거기서 아무도 그를 동료로 안 봐요. 커피포트마저 따로 놓입니다.
도로시는 사실상 부서를 이끌고 있는데 직함이 없습니다. 감독자 역할을 하면서 감독자 급여는 못 받아요. 승진 신청을 하면 자리가 없다는 답만 돌아옵니다.
메리는 엔지니어가 되고 싶은데 자격 요건에 특정 학교 수업이 들어 있습니다. 그런데 그 학교는 백인만 다닐 수 있어요.
세 사람의 문제가 다 다릅니다. 인정을 못 받는 것, 직함을 못 받는 것, 자격을 못 얻는 것. 이렇게 나눠놔서 차별이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가 훨씬 구체적으로 보입니다.
화장실 장면을 어떻게 볼 것인가
이 영화에서 제일 유명한 장면이 있습니다.
캐서린이 근무하는 건물에는 유색인종용 화장실이 없어요. 그래서 화장실을 가려면 다른 건물까지 한참을 뛰어가야 합니다. 서류 뭉치를 안고, 하이힐을 신고요.
상사가 왜 자꾸 자리를 오래 비우냐고 다그치는 장면에서 캐서린이 폭발합니다. 이 영화에서 제일 감정이 크게 터지는 대목이고, 아마 예고편에서 보신 분도 많을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하나 알아두시면 좋은 게 있습니다. 이 화장실 에피소드는 실제로는 캐서린 본인의 경험이라기보다 다른 인물의 경험에 가깝다고 알려져 있어요. 나중에 캐서린 본인이 자기는 그냥 백인 화장실을 썼고 아무도 뭐라 안 했다는 취지로 말한 적도 있고요.
영화가 극적 효과를 위해 합치고 각색한 부분입니다. 상사가 표지판을 부수는 장면도 실제로 있었던 일은 아니고요.
이걸 알고 나면 좀 김이 새나 싶기도 한데, 저는 그렇진 않았습니다. 다만 이 영화를 역사 기록으로 보시면 안 된다는 정도는 짚고 넘어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기계가 들어오는 장면이 제일 좋았습니다
저는 도로시 이야기가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어느 날 NASA에 거대한 컴퓨터가 들어옵니다. 방 하나를 통째로 차지하는 기계예요. 이게 들어온다는 건 계산하는 사람들이 곧 필요 없어진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불안해하는 동안 도로시는 도서관에 가서 프로그래밍 책을 빌립니다. 그 책이 백인 구역 서가에 있어서 몰래 가져오는 장면도 나오고요.
그리고 팀원들한테 그걸 가르칩니다. 우리가 저 기계를 다루면 우리를 못 자른다는 논리로요.
이 대목이 좋았던 이유는, 이 사람이 화를 내는 대신 계산을 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바뀌는 방향을 먼저 읽고 거기에 자리를 만들어버린 거잖아요. 저는 이 장면에서 좀 감탄했습니다.
숫자가 사람을 설득하는 이야기
이 영화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는 우주비행사가 발사되는 장면입니다.
발사 직전에 문제가 생겨요. 컴퓨터가 계산한 궤도 수치를 아무도 완전히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됩니다. 그때 우주비행사가 캐서린을 지목합니다. 그 사람한테 검산을 맡기라고요.
이게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존 글렌이라는 우주비행사가 계산을 사람이 다시 확인해주면 그때 가겠다고 했다고 하죠.
저는 이 대목이 이 영화의 핵심이라고 봤습니다. 앞에서 온갖 차별이 나오는데, 결국 상황을 바꾼 건 연설이나 시위가 아니라 이 사람이 계산을 정확하게 했다는 사실이었어요.
물론 그게 정의롭다는 뜻은 아닙니다. 남들보다 훨씬 잘해야만 겨우 인정받는다는 건 그 자체로 부당한 거니까요. 영화도 그걸 모르지 않습니다. 다만 그 시대에 그 사람들이 쓸 수 있었던 방법이 그거였다는 걸 보여주는 거죠.
배경을 조금만 알고 보면 좋습니다
1960년대 초 미국 상황을 아주 조금만 알고 보시면 훨씬 잘 들어와요.
당시 미국과 소련이 우주 개발로 경쟁하고 있었는데 미국이 계속 밀리고 있었습니다. 소련이 먼저 위성을 올렸고 사람도 먼저 올렸어요. 영화 초반에 NASA 사람들이 초조해하는 게 그래서입니다.
그리고 같은 시기에 미국 남부에는 인종 분리 제도가 남아 있었습니다. 학교, 버스, 식당, 화장실이 다 나뉘어 있었어요. 이게 법으로 정해져 있던 거고요.
그러니까 이 영화는 국가가 우주로 나가려고 총력을 기울이던 시기에, 정작 그 계산을 하던 사람들은 같은 건물 화장실도 못 썼다는 얘기입니다. 이 두 가지가 같은 시대에 나란히 있었다는 게 이 영화의 출발점이에요.
밝은 영화입니다
무거운 소재인데 영화는 의외로 밝습니다.
음악이 경쾌하고, 웃긴 장면도 꽤 있고, 세 사람이 모여서 수다 떠는 장면들이 편해요. 차별을 다루는 영화들이 대개 보고 나면 진이 빠지는데 이 영화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걸 두고 너무 순하게 만들었다는 지적도 있어요. 실제 그 시대는 훨씬 험했을 텐데 갈등을 다 봉합해버린다는 거죠. 일리 있는 얘기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저는 이런 영화도 필요하다고 봐요. 가족이랑 같이 보기에 이만한 게 없거든요. 아이들이 봐도 될 만큼 순하면서 내용은 남는 영화가 생각보다 드뭅니다.
실제 인물들은 어떻게 됐나
세 사람 다 실존 인물입니다.
캐서린 존슨은 이후에도 오래 NASA에서 일했고, 2015년에 대통령이 주는 훈장을 받았습니다. 100세를 넘겨 살다가 2020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NASA에 그의 이름을 딴 건물도 있습니다.
메리 잭슨은 소송까지 해서 야간 수업을 들었고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가 됐습니다. 도로시 본도 결국 정식 감독자 직함을 받았고요.
원작은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입니다. 마고 리 셰터리라는 작가가 조사해서 쓴 책이고, 이 책이 나오기 전까지 이 사람들 이야기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았어요. 제목이 숨겨진 인물들인 이유가 그겁니다.
영화가 각색한 부분이 있긴 해도, 이 사람들이 실제로 그 일을 했다는 건 사실입니다. 그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이런 분께 권합니다
일단 아이들이랑 같이 보기 좋습니다. 초등 고학년 정도면 충분히 이해할 내용이에요. 보고 나서 얘기할 거리도 많고요.
역사물인데 지루한 거 싫으신 분들한테도 맞습니다. 러닝타임이 부담스럽지 않고 전개가 빠릅니다.
반대로 좀 더 날카롭고 불편한 걸 원하시는 분들한테는 심심할 수 있어요. 이 영화는 관객을 편하게 해주는 쪽을 택했거든요. 그게 장점이자 한계입니다.
저는 다 보고 나서 캐서린 존슨을 검색해봤습니다. 사진이랑 인터뷰 영상이 꽤 남아 있더라고요. 영화보다 실제 인물이 더 재밌는 경우가 가끔 있는데 이게 그랬습니다.
같이 보면 좋은 영화
비슷한 결로는 그린 북이 있습니다. 조금 더 무거운 쪽을 원하시면 셀마나 노예 12년이 있고요. 우주 쪽에 관심이 가셨다면 아폴로 13이나 퍼스트맨을 이어서 보시면 같은 시기 다른 각도가 보입니다. 아폴로 13은 지금 봐도 손에 땀이 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