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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캔스피크 리뷰 (위안부, 나문희, 영어연설)

by 키워드작가 2026. 2. 24.

나문희 배우가 이 작품 하나로 청룡, 백상, 대종상 3대 영화상 여우주연상을 모두 석권했습니다. 저는 그저 좋아하는 배우들이 나온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정보 없이 극장을 찾았다가, 예상치 못한 감동에 눈물을 흘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유쾌한 코미디인 줄 알고 갔는데 영화가 끝날 무렵엔 가슴 한편이 먹먹해져 있었습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는 진상 민원인 할머니와 원칙주의 공무원의 만남으로 시작하지만, 점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이라는 무거운 역사와 마주하게 되는 작품입니다.

 

위안부 할머니가 영어를 배우려는 진짜 이유

영화 초반부는 정말 웃겼습니다. 구청에 매일같이 민원을 넣는 '도깨비 할머니' 옥분과, 규정과 원칙만 따지는 깐깐한 공무원 민재의 충돌은 전형적인 코미디 구도처럼 보였습니다. 옥분은 영어를 배우고 싶다며 민재를 졸졸 따라다니고, 민재는 귀찮아하면서도 결국 그녀를 도와주게 됩니다. 동네에서 소문난 억척스러운 할머니의 모습은 초반부터 웃음을 자아내며 관객의 마음을 가볍게 열어줍니다. 그런데 이 유쾌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지는 순간이 옵니다. 옥분이 영어를 배우려는 진짜 이유가 밝혀지는 장면입니다. 저는 그 순간까지도 단순히 버킷리스트나 취미 정도로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해외 청문회에서 직접 증언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할머니의 시절 이야기, 제 할머니 세대가 겪었던 일본군 위안부 피해에 대해 자신의 입으로 직접 말하기 위한 준비였던 겁니다. 제가 알고 있던 위안부 문제는 역사 교과서나 뉴스에서 접한 정도였습니다. 일자리를 마련해 준다는 말에 속아서 끌려가거나, 협박당해 위안소로 가게 된 여성들의 이야기. 그곳에서는 우리말도 쓰지 못하게 했고, 도망갈까봐 외출도 금지했다고 합니다. 몸과 마음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받았던 분들입니다. 영화를 통해 이 문제를 다시 마주하게 되니, 그저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 실제로 누군가가 겪은 고통이라는 게 더 크게 와닿았습니다. 영화는 이 무거운 진실을 감정을 과하게 자극하지 않고 담담하게 전달합니다. 그 절제된 연출이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줬습니다. 과거를 말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지, 영화는 소리치지 않고 조용히 보여줍니다. 민재 역시 처음에는 그저 영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독특한 노인으로만 여겼지만, 그녀의 목적을 알게 되면서 완전히 달라집니다. 단순히 영어를 가르치는 역할을 넘어, 옥분의 증언을 지지하고 함께 준비하는 동반자가 되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럽게 그려집니다.

영화 아이 캔 스피크
영화 아이 캔 스피크

 

나문희 배우의 청문회 영어 연설 장면

저는 이 영화에서 청문회 영어 연설 장면을 제 마음속 최고의 명장면으로 꼽습니다. 옥분은 서툰 영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증언합니다. 발음도, 문법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수십 년을 침묵 속에 살아온 한 사람의 진심이 오롯이 담겨 있었습니다. 나문희 배우의 연기는 그 장면을 단순한 대사 이상의 것으로 만들어냈습니다. 완벽하지 않기에 오히려 더 진실하게 느껴지는 그 목소리는, 스크린을 넘어 제 가슴 속으로 직접 파고들었습니다. "아이 캔 스피크"라는 제목의 의미를 그제야 완전히 이해했습니다. 단순히 영어를 말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침묵을 깨고 자신의 이야기를 세상에 말할 수 있게 되었다는 선언이었던 겁니다. 그 장면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저는 동상을 보러 간 기억이 있습니다. 평화의 소녀상 앞에 서니 영화에서 본 장면들이 더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 이건 단순히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기억하고 증언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의 역사라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습니다. 말할 수 있었기에, 기억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전하는 가장 큰 메시지였습니다. 이제훈 배우 역시 원칙적이지만 따뜻한 민재 역할을 자연스럽게 소화하며 두 배우 사이의 케미를 완성시켰습니다. 코믹한 장면에서도, 진지한 장면에서도 어색함 없이 흐르는 두 사람의 호흡이 영화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줬습니다. 세대를 넘어선 연대의 모습은 이 영화가 단순히 위안부 문제만을 다루는 작품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아이 캔 스피크〉는 역사적 아픔을 다루면서도 관객이 끝까지 함께할 수 있도록 균형을 유지합니다. 초반의 유쾌함은 마음의 문을 열어주고, 후반의 진중함은 깊은 여운을 남깁니다. 저는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같이 보지 못했지만,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꼭 보여주고 싶은 영화입니다. 2017년 개봉 이후 작년에 8년 만에 재개봉할 만큼, 시간이 지나도 많은 이들의 마음속에 살아 있는 작품입니다. 웃다가 울고, 오래도록 마음에 남는 영화를 찾고 계신다면 〈아이 캔 스피크〉를 진심으로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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