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줄거리를 요약해달라고 하면 좀 곤란한 영화입니다.
버스 기사가 있어요. 월요일에 일어나서 출근하고, 운전하고, 퇴근하고, 개 산책시키고, 맥주 한 잔 마시고 잡니다. 화요일에도 그럽니다. 수요일에도 그러고요.
그게 끝입니다. 일주일치가 그대로 영화가 됩니다.
이걸 보고 나서 며칠 동안 기분이 이상하게 좋았어요. 왜 그런지 정리가 안 돼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그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합니다.
같은 하루가 일곱 번 반복되는데 안 지루한 이유
주인공 이름은 패터슨입니다. 그가 사는 도시 이름도 패터슨이고, 그가 모는 버스 노선도 패터슨을 돕니다. 이름이 세 번 겹쳐요.
영화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딱 일주일을 따라갑니다. 매일 거의 같은 장면으로 시작해요. 알람 없이 눈을 뜨고, 옆에 자는 아내를 잠깐 보고, 시리얼을 먹고, 도시락을 들고 걸어서 나갑니다.
보통 이렇게 반복하면 관객이 지칩니다. 근데 이 영화는 매일 조금씩 다른 걸 보여줍니다. 깨는 시각이 6시 10분이었다가 6시 15분이 되고, 시리얼 그릇 위치가 미묘하게 바뀌고, 버스에서 들리는 승객들 대화가 매일 달라져요.
그러니까 반복이 아니라 변주입니다. 관객은 어느 순간부터 오늘은 뭐가 다른지를 찾기 시작하게 되는데, 이게 이 영화가 관객을 붙잡아두는 유일한 방식이면서 동시에 이 영화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똑같아 보이는 하루가 사실은 매일 다르다는 것. 대사로는 한 번도 안 나오는데 두 시간 내내 그 얘기만 합니다.
시를 쓴다는 것에 대해 이렇게 안 폼 잡는 영화
패터슨은 시를 씁니다. 운전 시작 전에 노트를 꺼내서 몇 줄 적고, 점심 시간에 또 적어요.
여기서 이 영화가 아주 영리한 게, 이걸 대단한 일처럼 안 그립니다. 예술가의 고뇌 같은 게 전혀 없어요. 그냥 성냥갑을 보다가 성냥에 대한 시를 씁니다. 정말로 그게 다예요.
발표할 생각도 없고, 누구한테 보여줄 생각도 없습니다. 아내가 복사본이라도 만들어두라고 계속 얘기하는데 매번 알겠다고만 하고 안 해요.
저는 이 태도가 이 영화에서 제일 마음에 들었습니다. 뭔가를 쓰거나 만드는 사람들 이야기는 대개 인정받거나 실패하는 쪽으로 흘러가잖아요. 이 영화는 그 질문 자체를 안 합니다. 그냥 쓰는 게 좋아서 쓰는 사람이 있고, 그걸로 충분하다고 보는 거죠.
참고로 극중에 나오는 시들은 실제 시인이 이 영화를 위해 쓴 겁니다. 그래서 어설픈 흉내가 아니라 진짜 시예요. 그 점도 이 영화가 시를 대하는 태도를 보여줍니다.
아내 로라를 어떻게 볼 것인가
패터슨의 아내 로라는 정반대 사람입니다.
매일 새로운 걸 벌여요. 커튼에 흑백 무늬를 그리고, 컵케이크를 만들어 팔겠다고 하고, 갑자기 기타를 사서 컨트리 가수가 되겠다고 합니다. 집 안이 점점 흑백 패턴으로 뒤덮여요.
이 인물을 두고 감상이 좀 갈립니다. 현실감 없다는 쪽이랑, 저게 사랑스럽다는 쪽이요.
저는 이 둘의 관계가 이 영화의 숨은 축이라고 봤습니다. 패터슨은 매일 같은 걸 하고 로라는 매일 다른 걸 하는데, 둘 다 상대를 고치려고 하지 않아요. 로라는 패터슨의 시를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패터슨은 로라가 뭘 벌이든 다 좋다고 합니다.
싸우는 장면이 단 한 번도 없습니다. 갈등 없는 부부 이야기가 지루하지 않게 나오는 것도 꽤 드문 일이더라고요.
개가 노트를 물어뜯을 때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사건다운 사건이 하나 일어납니다. 개가 시 노트를 갈기갈기 찢어놓는 거예요.
몇 년치 시가 한꺼번에 사라집니다. 복사본은 없고요. 아내가 그렇게 만들어두라고 했는데 안 했으니까.
여기서 패터슨은 소리를 지르지도 울지도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앉아 있어요. 저는 이 장면에서 마음이 좀 내려앉았습니다. 큰 사건이 아무것도 없던 영화라 이 정도가 재난처럼 느껴지더라고요.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그가 늘 가던 폭포에 앉아 있는데, 낯선 사람이 옆에 앉아요. 그 사람이 건네는 물건 하나로 이 영화가 끝납니다. 위로하는 대사도 없고 해결책도 없어요. 그냥 다시 시작할 수 있게 해주는 물건 하나입니다.
이 결말을 두고 허무하다는 반응도 있는데, 저는 이게 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유일하게 정직한 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잃어버린 걸 되찾아주면 그건 다른 영화가 되니까요.
도시 이름이 왜 중요한가
패터슨이라는 도시는 실제로 뉴저지에 있습니다. 한때 공업으로 잘나갔다가 지금은 많이 가라앉은 동네예요.
이 도시 출신 시인이 있습니다. 자기가 사는 도시를 소재로 아주 긴 시를 쓴 사람인데, 극중 패터슨이 좋아하는 시인이기도 하고요. 영화에서 그 이름이 몇 번 나옵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특별할 것 없는 도시를 평생 들여다본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 위에 세워져 있는 셈입니다. 주인공이 시를 쓰는 게 갑작스러운 설정이 아닌 거죠. 이 도시에서는 원래 그런 일이 있었던 겁니다.
이걸 알고 보면 그가 매일 지나치는 폭포나 낡은 건물들이 다르게 보입니다. 몰라도 영화를 보는 데 지장은 없는데, 알면 확실히 한 겹 더 생깁니다.
버스 안 대사를 놓치지 마세요
버스에서 승객들이 나누는 대화가 매일 다릅니다. 배경음처럼 흘러가는데 사실 이게 꽤 공들여 쓴 부분이에요.
무정부주의자 얘기를 하는 아이들, 여자한테 말 걸어본 무용담을 늘어놓는 남자들, 별것 아닌 걸로 티격태격하는 승객들. 전부 아무 의미 없는 잡담처럼 들립니다.
근데 패터슨은 그걸 다 듣고 있어요. 그리고 그날 쓰는 시가 그 대화에서 나올 때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시가 어디서 오는지를 설명하는 방식이 이겁니다. 대단한 영감이 아니라 남의 잡담이라는 거죠. 잘 듣는 사람한테만 들리는 거고요.
한 번 더 볼 사람을 위한 얘기
두 번째로 보면 쌍둥이가 계속 보입니다.
초반에 아내가 쌍둥이 꿈을 꿨다고 얘기하는데, 그 뒤로 영화 내내 쌍둥이가 나와요. 버스에 탄 노인 둘, 길에서 마주치는 소녀 둘, 바에 앉은 사람들. 한 번 알아채면 안 보이던 게 계속 보입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영화는 설명 안 합니다. 저도 정확히는 모르겠어요. 다만 똑같아 보이는 두 사람이 사실은 다른 사람이라는 게, 똑같아 보이는 하루가 사실은 매일 다르다는 얘기랑 겹친다는 정도로 읽었습니다.
맞는 해석인지는 모르겠는데, 이런 걸 찾는 재미로 다시 보게 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가 맞는 사람 안 맞는 사람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호불호가 꽤 갈립니다.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 분들한테는 정말 안 맞아요. 두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 게 사실이니까요. 중간에 끄셔도 이상한 게 아닙니다.
반대로 요즘 뭘 봐도 피곤하다 싶은 분들한테는 잘 맞을 것 같습니다. 자극이 하나도 없어서 오히려 편해요. 저는 며칠 야근하고 나서 봤는데 그 타이밍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뭔가를 꾸준히 하고 있는데 그게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는 분들. 블로그든 그림이든 악기든요. 이 영화는 그거 계속해도 된다고 말해주는 쪽입니다. 대단해질 거라고는 안 하고, 그냥 계속해도 된다고요.
저는 그 말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보고 나서 기분이 이상하게 좋았던 게 그래서였구나 싶었습니다.
비슷한 결의 작품
같은 감독의 커피와 담배도 추천합니다. 사람들이 앉아서 대화만 하는 영화인데 결이 비슷해요. 조용한 일본 영화 쪽을 좋아하신다면 카모메 식당이나 리틀 포레스트도 나란히 놓고 볼 만합니다. 사건 없이 일상만으로 두 시간을 채우는 영화들이거든요.